(형님이 쓰신 글을 옮깁니다.)
난 올해 65세.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휠체어 도움이 없으면 외출은 어렵다. 보청기가 없으면 들리지도 않는다. 허리는 척추 후만증이 있어 거의 90도로 굽었다. 글도 잘 보이지 않는다. 눈 앞 10센티 정도는 되어야 글자 구분이 가능하다. 말도 제대로 안되어서 간단한 내용만 문자 필담을 주로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컴퓨터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 도전일지도 모른다. 한 문장을 입력하는데 만 거의 두세 시간 걸린다. 자판을 잘못 누르면 수정해야 하는데 백스페이스키를 누르고 빨리 손을 떼지 못해 지금까지 입력했던 내용들이 다 지워져 버린 경우도 많다.
30대부터 뇌성마비 복지관에 다니면서 그림에 도전을 했다. 손이 자유롭지 않아 선을 긋는 형태의 그림은 못 그린다. 대신 붓으로 점을 찍는 방식의 그림은 그릴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산수화를 그리게 되었다. 장애인 그림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구청에서 주관하는 장애인 미술전에 출품하여 전시한 적도 있다. 점으로 면을 완성했고 상을 받았다는 것에 나름 자부심을 느낀다. 입상작이 달력으로 제작되어 배포되기도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뭔가 하나는 남기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는데 그림으로 그 하나를 이루었다. 근데, 이루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 이번에는 ‘글’에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찍어서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그림 그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하고 다른 점이 있다. 그림은 원하는 곳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면서 찍으면 되는데 컴퓨터 화면에서는 순서대로 찍어야 한다는 점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무척 어렵다. 카톡으로 문자 보내고 받기는 오래 전부터 해봐서 느리지만 익숙한데, 주로 단문이나 단어 중심으로 해서 크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근데, 문장을 만들고 한 글자 한 글자 순서대로 박아서 전체 그림을 완성하려니 머리에 쥐가 난다. 난 뇌성마비 환잔데 이래도 되나 싶다.
금년 초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 3등급이다. 하나뿐인 남동생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가족요양신청을 해서 월 몇 십만 원씩 받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평생 남의 보살핌만을 받으면서 살다가 조금이나마 보답을 할 수 있는 길이 생겨서 기쁘다. 몇 년 전 아버지께서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부터 매일 내 옆에 와서 ‘와 태어났노? 니는 내한테 무슨 빚을 받아내려고 태어났노 말이다!’ 하며 절규하듯이 외치곤 했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나를 키우시느라 무척 고생을 하셨을 듯싶다. 그래도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시켜주셨으니 오늘 날 이런 글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생은 어머니께서 더 하신 것 같은데 어머니는 나한테 절규하듯이 소리치지는 않으신다. 혹시 어머니도 마찬가지 심정일까? 나중에 한 번 여쭤보고 싶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내가 다니는 뇌성마비 복지관에 찾아왔었다. 가끔씩 페이스 북으로 서로 안부를 묻곤 했는데 직접 찾아와줘서 놀랬다. 얘네들이 죽을 때가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날 데리고 나가 밥도 사주고 드라이브도 시켜주었다.
난 동생하고 연년생이다. 나 혼자 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서 1년 입학유예를 해서 동생하고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같은 반에서 동생하고 짝으로 공부했다. 등하교때 동생이 내 가방도 들어주고 부축도 해주었었다. 내 초등학교 친구는 다 내 동생친구이기도 하다.
친구들아! 고맙다. 그날은 고맙다는 말도 미처 못 했다. 내 동생은 한 번도 나를 데리고 나가 밥을 사준 적 없는데 너희들이 내 소원을 들어주었구나.
난 얼마 못살 것 같다. 하루하루가 힘들다. 매일 먹어야 하는 한 움큼의 약들은 이제 삼키기조차 어렵다. 이 글 쓰느라 내 인생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짜내고 있다. 그래도 이글 하나 남기고 갈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요즘 따라 치매에 걸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게 와서 절규하듯이 쏟아내던 말이 더 생각난다. ‘니는 내한테 무슨 빚을 받아내려고 태어났노?’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받기만 하는 삶이었던 듯싶다. 많이 받기는 받았는데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정작 받아내야만 했었던 빚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받아내기는 한 건가? 못 받았으면 혹시 다음 생에 또 이렇게 태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받은 것으로 하고 싶다. 이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뭘 받아냈는지 죽기 전까지만 생각해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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