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부스에서 바라보는 세상
난 주차관리인이다. 빌딩주차관리인을 한 지 5개월 차다. 은퇴후 대학교 경비원을 하다가 퇴직하고 빌딩 주차관리인을 하고 있다. 가로80㎝,세로160㎝ 부스에서 일하고 있다.
일은 단순하다. 빌딩 방문 차량이 오면 어느 사무실 방문차량인지 확인하고 주차권을 발급후 기계식 주차기에 입고하고, 방문이 끝나 손님이 도장 찍힌 주차권을 내밀면 차량을 출고시켜주는 일이다. 대부분의 손님은 별 요구 없이 주차 지시에 잘 따르는 편인데 가끔 빌런이 있다.
주차기 앞에서 차키를 주면서 발렛주차를 해달라는 손님이 있다. (팁도 안주면서...)물론 발렛주차를 해주진 않는다. 만에 하나 입고시 주차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운전자가 조심조심 입고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정도까지만 한다.
차고가 높아서 주차기 입고가 불가능한 차량은 이웃 빌딩 주차장으로 안내를 해주는데, 재방문할 때는 알아서 그냥 가면 될 것을 꼭 주차부스 앞에서 클락숀을 빵 누르고 가는 손님이 있다. 주차부스 안에 앉아 있다가 깜짝 놀란다.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
주차기 입고시에 직진으로 입고를 해야 하는데 간혹 대각선으로 진입하는 차량이 있다. 일단 후진 했다가 직진으로 들어오라고 유도를 해줘도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차량이 있어 순간 당황스럽게 한다. 한 여성 운전자는 입고시 사이드 미러를 주차기 입구 벽면에 부딪쳐 박살이 났는데 창피하다며 다음부터는 오지 않는다.
주차부스안에서 오가는 사람을 쳐다보면 내가 동물원 우리안에 있는 원숭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지나가던 행인이 사탕을 주고 가기도 한다. 어떤 운전자는 커피를 사서 주고 가기도 한다. 밖에서 보면 좁은 주차부스안에 앉아 있는 내가 불쌍해 보이는 모양이다. 아직은 세상 살 만하다.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손님이 오면 바로 대응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삼각김밥을 사가지고 주차부스로 들어간다. 손님이 뜸한 시간대에 눈치 봐서 삼각김밥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삼각김밥 두 개면 제법 든든하다.
기계식 주차시설은 주변 청소를 깨끗이 해야 한다. 혹시나 휴지, 꽁초가 차량 바퀴에 끼어 주차기 내부로 떨어지면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어서다. 주차기 입구 주변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를 줍다보면 담배꽁초가 보도블럭 사이에 끼어서 끄집어 내기 곤란한 경우가 있다. 빌딩 주변이 주점가라 취객이 버린 담배꽁초가 많은 편이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 중 일부는 꼭 잘 안 보이는 틈새로 집어 넣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차라리 한 쪽에 그냥 던져 놓으면 청소할 때 어렵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몇 걸음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꼭 안 보이는 틈새에 밀어넣고 간다. 담배꽁초를 향해 침도 뱉어 놓고 간다. 담배꽁초에 침이 적중하면 ‘앗싸’하면서 주먹을 불끈 쥔다. 이를 보고 있는 나는 청소할 생각에 기가 막힌다. 이런 때에는 전자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훨씬 더 고상해 보인다.
눈, 비 올 때는 주차기 파레트에 묻은 물기를 잘 닦아줘야 한다. 물기가 남아 있으면 녹이 슬어 주차기 수명이 단축되므로 꼼꼼하게 닦아줘야 한다. 가끔 차가 밀릴 때 파레트 물기제거를 하고 있노라면 손님이 클락숀을 ‘빵’누르기도 한다. 바쁜 손님 사정을 이해는 하는데 주님보다 높으신 건물주님의 엄명이라 안할 수도 없다.
주차부스는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다. 겨울에는 작은 전기난로 하나로 버틴다. 요즘 날이 더워져서 에어컨을 켜봤더니 선풍기 바람보다도 못하다. 차라리 창문을 열어두는 편이 더 시원하다.
주차관리는 차량이 몰릴 때는 바쁘지만 뜸할 때는 한가하다. 한가하면 온갖 생각이 든다. 지나온 삶을 조용히 생각해 보면 후회스러운 나날만 떠오른다. 나이 40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매10년마다 인생이 30%씩 다운 그레이드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일거리가 있는 것에 감사하다.
주차관리 알바도 조만간 그만둬야 한다. 좀 더 하고는 싶은데 다른 분들에게도 기회를 줘야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이 빌딩에 주차하러 오시는 분들의 스쳐가는 인생까지 편안하게 주차할 수 있는 인생주차 관리인 역할을 열심히 했노라고 스스로 자위를 해본다. 그 분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까 고민이 많다. 근데, 내 인생은 어디에 주차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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